[대전광역시의회] 특별기고 : 대전을 아카이브 하다 >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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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매월 문화예술 월간지 《월간 토마토》를 발행하고 지역 콘텐츠를 갈무리하거나 지역 저자를 만나 단행본을 출간한 지 이제 15년째다. 처음 《월간 토마토》를 창간할 때 거창한 뜻을 품었더랬다. 《월간 토마토》를 매개로 시민이 일상적으로 문화예술을 향유하기를 희망했다. 그 결과, 우리 시민이 더 나은 도시를 상상할 수 있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쑥쑥 자랄 수 있을 거로 기대했다.

지금도 이 바람은 다르지 않다. 다만, 시간이 쌓이며 처음에는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15년이라는 시간을 쌓으며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가치는 ‘기록’이었다. 우리가 매월 발행한 월간지가 169호에 이른다. 첫 호를 발행한 2007년 5월호부터 2021년 8월까지다. 2020년 2월부터 4월까지 대대적인 재편 작업을 위해 휴간한 3개월을 제외하고 매월 발행했다. 차곡차곡 쌓인 《월간 토마토》는 대전이라는 도시, 한 측면을 담아낸 기록물이었다. 매월 《월간 토마토》에 담았던 콘텐츠 중 일부를 다시 정리해 단행본으로도 출간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이 <대전여지도> 시리즈와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이다. 대전에 다섯 개 구 중에 현재 작업 중인 대덕구를 제외하고 중구와 동구, 유성구, 서구까지 모두 네 종의 <대전여지도>를 출간했다. 대전의 마을과 마을에서 삶을 살아낸 사람들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도 대전의 공간과 사람을 담아낸 책이다. 폐점 시간이 지난 중앙시장 모습을 담았고 신탄진에 ‘거지다리’를 추적해 그 흔적과 역사를 기록했다. 평생 막걸리를 만든 사람이나 열쇠를 제작한 사람, 양복을 만든 사람도 실었다. 일련의 작업은 지역에 쌓인 공간과 사람 이야기를 들춰내 의미를 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대전 시민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진행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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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과 자치’는 이제 시대 화두다. 코로나19 상황은 이 시대 화두가 지닌 당위성에 더 힘을 실어주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과 재원을 투여 중이다. 정부 회계 시스템을 손보거나 각종 마을 공동체 활성화 사업, 주민자치회 시범 사업 등을 추진하는 것도 분권과 자치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다.

꼭 필요한 일이지만, 제도와 시스템을 손보는 것만으로 ‘분권과 자치’를 완성할 수 없다. ‘자치’는 ‘시행 단위’가 얼마나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였는가에 그 성패가 달렸다. 성공적인 주민 자치를 위해 건강한 공동체를 복원하고 활성화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다. 공동체 복원과 활성화는 곧 구성원 사이 관계를 복원하고 활성화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인류가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 말고는 없다. 사적인 관계에서도 개인과 개인이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는가는 얼마나 많은(혹은 깊은) 이야기를 공유하는가에 달렸다.

한 사회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공유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중앙 집권적인, 특히 서울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처럼 서울을 제외한 ‘지역’이 지닌 가치에 관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던 나라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분권과 자치’에 관한 논의가 촉발한 즈음부터 ‘대전학’, ‘호남학’ 등 지역 고유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도 이런 우리 사회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각 지역이 지역 고유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행복한 지역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기반한다.

‘기록은 민주주의다’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월간 토마토》가 끊임없이 지역의 공간과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이를 다양한 플랫폼에 실어 시민과 공유하려는 이유기도 하다. 지역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은 분권과 자치 시대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다른 축이다.

지역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공공 영역에서 담당해야 할 부분이 무엇일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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