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의회] 의원논단 : 연필과 지우개의 정치·사회학 >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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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기다리는 사람에겐 너무 느리고, 걱정하는 사람에겐 너무 빨리 가며, 슬픈 사람에겐 너무 길고, 기뻐하는 사람에겐 너무 짧다고 했던가. 두 장 남은 달력(원고작성 10월 기준)을 앞에 두고 행정사무감사 등 정례회를 준비하며 올 한해를 되돌아본다.

연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전례 없는 추가경정예산을 4번이나 편성해가며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자 하루를 석 달처럼 쪼개 써왔다.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는데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몸을 쳐서 시민의 대변자로서 역할을 다 하고 있나 오늘도 고뇌한다.


지울 수 있는 낮은 자세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조르주 퐁피두는 ‘정치가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정치인을 말하고 정치꾼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이용하는 정치인을 말한다’고 했다.

흔히 정치가와 정치꾼을 말할 때, 전자는 Stateman, 후자는 Politician이라고 한다. 스테이츠먼이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폴리티션은 국가보다 자신과 당파의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진정한 정치인은 더 나은 시민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 시민들과 비전을 공유하고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만약에 100명 중 99명이 찬성하는 일에 단 한 명이 반대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은 ‘한 명의 반대 목소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들어야 한다’라는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한 명의 반대 목소리를 들어 봤더니 틀린 의견이다. 그러면 99명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재확인 할 수 있어서 좋고, 또 반대 주장이 옳았다면 진실을 들을 기회를 놓칠 뻔했는데 포착해서 좋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의원은 낮은 자세로 소통하며 시민 곁으로 밀접하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치인은 늘 연필과 지우개 같은 존재여야 하는데 시민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찾아 쓸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지우개로 지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시의원의 숙명

연필과 지우개는 두 가지 다 세상을 바꾼 101가지 발명품에 속한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자판기가 더 익숙한 시대지만 [칼의 노래] 저자 김훈은 지금도 연필로 글을 쓰고, 발명왕 에디슨은 몽당연필을 1,000자루씩 주문해 썼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물건의 수가 2만 종이 넘는데 연필이 숱한 발명과 기술발전의 밑거름이 됐고, 연필 없이 불후의 명작이나 미술 작품이 탄생할 수 없었기에 가장 작고 소소한 도구지만 가장 넓은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역사를 기록하고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연필은 잘못 쓰였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지울 수 있는 낮은 자세, 겸손함 그 자체가 아닐까?

국민 아버지라는 최불암 씨가 어느 인터뷰에서 배우는 무엇으로 먹고사느냐는 질문에 ‘배우는 박수를 먹고 살고, 시인은 詩만 먹고 산다’라고 했던 말이 뇌리를 스친다. 정치인이 이슬만 먹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시민의 질책과 성원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게 시의원의 숙명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라는데 날마다 가슴속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늘 고민한다. 썼다가 지우고, 또다시 쓰고. 우리 모두 함께 사는 세상, 좀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살아가야 하기에 오늘도 연필을 힘껏 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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