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의회] 대전방명소 : 동춘당 >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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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가장 대표적인 문화재를 말하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춘당을 말할 것이다. ‘동춘당’은 대전의 큰선비라 일컬어지는 송준길의 호이면서 동시에 별당 건물을 말한다. 대전의 역사 명소 중 가장 대표적인 역사 명소라 할 수 있다. 동춘당과 송준길의 정신이 깃든 역사 명소를 펼쳐놓은 곳이 있으니 이름하여 동춘당 생애길이다.

동춘당 생애길은 대전의 중리사거리에서 송촌동 입구 하나로 병원 앞에서 시작한다. 이곳에는 동춘당 생애길을 알리는 아치가 길 양옆으로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동춘당 생애길은 송애당과 쌍청당 그리고 동춘당 공원과 비래동의 옥류각까지 이르는 길이다. 이 길 위에는 동춘당 송준길의 생애와 사상, 학문적 업적 등의 이야기가 길 위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세상은 올곧고 아름다운 참 선비의 자취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가뭄에 한줄기 단비가 되는 조선의 큰선비 동춘당 송준길의 맑은 소리 맑은 정신을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다.

아치를 출발하면 오른쪽 인도가에 동춘당 생애길의 안내판이 있고 발길은 송애당으로 향한다. 단촐하고 정갈한 느낌의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오는데 송애당이다. 송애당의 송애는 눈 서리를 맞아도 변치 않는 소나무의 곧은 절개와 높이 우뚝 선 절벽의 굳센 기상을 간직하겠다는 뜻이다.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김경여의 높은 기상이 돋보이는 별당 건물이다. 송애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쌍청당이 있다.

쌍청당은 송 유가 세종 14년에 건립하여 거처하던 별당건축으로 그의 호인 쌍청을 따다 붙였다. 과거 쌍청당의 주변은 논과 밭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하니 청풍과 명월의 맑은 기상을 마음에 담고자 하는 뜻의 쌍청이 꼭 어울리는 당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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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청당을 뒤로하고 큰길로 나오면 삼강려 애각을 만난다. 삼강이란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를 말하는데 옛부터 송촌을 삼강려 마을이라 불렀다. 그러니 송촌동은 충신, 효자, 열녀를 배출한 마을이란 뜻이다. 큰길가의 동춘당의 생애 이야기를 따라 올라가면 동춘당 공원에 도착한다.

동춘당 공원은 대전의 대표 문화재인 보물 제209호 회덕동춘당이 있는 곳이다. 동춘당의 건물 앞에 걸려 있는 동춘당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으로 모든 만물과 더불어 늘 봄을 함께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송준길의 학문적 업적을 어찌 이곳에 이루다 적을 수 있으리오. 송시열과 더불어 서인 노론을 이끌어 훗날 송시열과 함께 양송이라 불렸으며 전국 8개 서원에 배향된 인물이다. 해동 18현의 한 사람으로 “정승 10명이 죽어도 대제학 1명에 미치지 못하고, 대제학 10명이 죽어도 문묘 종사 현인 1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문묘에 제향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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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당은 단아함과 우아한 지붕의 곡선 등 한국건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잘 살려 낸 아름다운 건축으로 송준길의 역사적 의미가 더해져 보물로 지정된 대전의 대표 문화재이다.

동춘당 주변으로는 동춘 선생 고택과 송여옥 가옥이 있으며 그 앞으로는 금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금암은 거문고를 타는 바위라는 뜻이다. 이제 동춘당을 뒤로하여 비래동 고인돌을 지나 옥류각에 도착하면 마지막 길이다.

옥류각 앞에는 ‘초연물외’가 각자되어 있는 바위가 있는데 동춘당 송준길의 글씨라고 한다. 세속에 구속되지 말고 초연하라는 뜻이다. 초연물외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옥류각이다. 제월당 송규렴 등이 동춘 선생이 강학하던 곳을 기념하여 세운 누각이라고 한다. 송준길이 읊은 시 가운데 “층층 바위에 날리는 옥 같은 물방울”이란 시구를 따서 건물 이름으로 삼았다 하니 참으로 멋진 누각이다.

동춘당 생애길은 이렇듯 많은 문화유산과 함께 동춘당 송준길의 정신까지 더해진 문화유산길이다. 그러므로 대전에 오면 꼭 한번은 걸어 보아야 하는 대전의 대표 역사 명소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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